[나눔씨앗편지] 11. “달라도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 – 김주원 (피스모모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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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달라도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

 '김주원 활동가의 이야기' 피스모모 교육연수팀장, 평화교육 진행자

유독 햇살이 좋았던 10월의 어느 토요일, 피스모모는 교육부에서 주최하는 "2018 대한민국 시민 in 학생축제"에 초대받아 부스를 운영하며 행사에 함께했습니다. 전국 시도교육청 학교에서 학생분들이 직접 준비한 민주시민교육 사례 나눔과 다양한 체험, 참여형 활동이 진행되는 자리였어요. 평소 모모가 진행하는 평화교육 워크숍에서는 한 번의 만남을 위해 최소 3시간 정도를 제안 드리고는 하는데요. 짧은 시간을 돌아가며 많은 인원을 반짝 만나게 되는 부스 행사의 특성상 모모가 어떤 시공간을 준비해야 할지 조금 낯선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소중한 한 분 한 분과 조금 더 느긋하고 느린 시간 속에서 만나고 싶다는 아쉬움과 고민을 잠시 뒤로하고, 가능한 만큼이라도, 모모 부스에 들렀다 가시는 분들께 작은 평화를 선물하기로 했어요. 평화에 관한 그림책을 둘러보실 수 있는 공간과 귀퉁이 사진전, 평화에 대한 글귀를 필사하여 엽서로 간직할 수 있는 테이블 등을 마련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모가 준비한 소소하지만 특별한 선물은 바로, 피스 타투 스티커와 평화감수성을 깨우는 문구가 담긴 스티커였어요.

장면 하나, “달라도 괜찮아”

몇 가지 평화의 문구가 담긴 스티커를 골라가셨던 분들 중 특히나 기억에 남았던 장면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이번에 모모가 야심 차게 제작한 "달라도 괜찮아" 스티커에는 문구 위쪽에 작지만 선명한 무지개가 떠있는데요. 무지개에는 다채롭고 고유한 존재를 환영하는 의미와 특히나 퀴어 청소년, 선생님들을 응원하는 피스모모의 애정이 담겨 있어요. "달라도 괜찮아" 스티커는 이 날의 부스 행사에서 처음 공개되었는데 그 작은 무지개의 의미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주신 퀴어, 페미니스트 청소년 분들이 계셨어요. 그렇게 함께해주신 분들 덕분에 모모의 신상 스티커는 더욱 빛이 나고 특별했답니다. 물론 그저 예쁜 디자인으로만 생각하신 분들도 있었고 약간의 불편함 혹은 낯선 감정을 안고 그 의미나 의도(?!)를 질문하신 분도 계셨지만, 앞으로도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장면 둘, “느려도 괜찮아”

광화문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이번 자리에는 행사를 알고 직접 찾아오신 분들 외에도 정말 다양한 손님들이 부스에 다녀가셨어요. 자전거에서 내려 잠시 구경하고 가는 분들, 강아지와 산책하던 분, 서울을 여행 중인 외국인 방문객들, 옆에서 진행되는 환경축제에 오셨다가 지나가시는 분, 등등.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광장이기에 예상보다 많은 인원의 어르신들께서 발길을 멈추었다 가시고는 하셨어요. 모모를 잘 몰라도, 이 자리에 우연히 오셨더라도, 마음에 와닿는 문구가 있다면 골라가시도록 반가운 인사를 전했습니다. 각각의 문구를 찬찬히 들여다보시던 어느 할아버지의 손길이 멈춘 곳에는 "느려도 괜찮아"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마주하는 시간이 짧아 그 문구를 선택하신 이유에 대해서는 미처 여쭤보지 못했지만, 기다림이 많지 않은 현실 속에서 뭔가 비현실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헤아리고 그에게 남아있는 시간을 가늠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자꾸만 떠올리게 됩니다.

장면 셋, “돌아보고 돌볼 시간”

오후 다섯시 부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자녀와 함께 네 명의 가족 손님들이 방문하셨어요. 엽서에 글귀를 써 갈 수 있는 테이블에서 어린이 손님은 여러 장의 카드를 앞에 두고 고민하던 중이었어요. 그 순간 보호자분은 “자, 빨리빨리 쓰고 가자. 저 카드에다가 쓸래? 담임 선생님한테 써서 드리면 되겠다”라며 순식간에 카드와 수신인을 지정하고 아이를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일정이 바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어른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 했지만 아이가 충분히 생각하고 직접 선택할 시간과 기회를 빼앗긴 것 같아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다음에 어디선가 운명적으로 모모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꼭 천천히- 여유롭게 쉬었다 가실 수 있기를 바랄게요.

그날은 학생 축제 이외에도 차별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평등 행진이 있던 날이기도 하고 동시에 태극기 집회와 여러 목소리가 공존하는 아주 분주하고 와글와글한 하루였어요. 광화문 광장에서 다양한 인파를 마주하고 서로 다른 장면을 지켜보며, 소규모 워크숍의 형태로 참여자를 만날 때와는 또 다른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지나치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짧은 문장 한 줄, 고작 스티커 한 장일지도 모르지만 잠시나마 모모의 공간에 들러주신 분들을 위해, 지친 하루를 위로하고 새로운 관계를 응원하는 다정한 기운이 되기를 바라며 마음을 건넸습니다. 평화교육으로 과연 한 사람이, 학교가, 사회가 바뀔 수 있을까 질문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혹은 평화라는 개념 자체가 이 치열하고 경쟁적인 현대 사회에서 너무나도 이상주의적인 발상이 아닌가 되묻기도 하시고요. 피스모모가 꿈꾸는, 그리고 실천하고 있는 평화는 각각의 구성원이 존재 자체만으로 평등할 수 있는 배움의 공동체, 내가 오롯이 나일 수 있는 안전하고 따뜻한 시공간입니다. 이는 단지 물리적인 교실이나 학교에서의 배움에만 머물지 않겠지요. 모모와 함께한 지 3년 차를 지나고 있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시는 질문에는 아직도 가끔 아리송할 때가 있어요. 관계의 감수성을 깨우는 것, 시간을 나누는 것, 빈자리를 알아차리고 내 옆자리에 초대하는 것, 이러한 순간들을 어떻게 하면 말과 글로 잘 전할 수 있을까 여전히 고민이 됩니다. 언어로 다 담을 수 없는 다정한 눈 맞춤과 서로의 온기가 더욱 절실한 계절이네요. 10월의 끝자락을 붙잡고 오늘은 잠시,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고 돌볼 시간을 나누어보면 어떨까요?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

– 미하엘 엔데, 모모

* 피스모모는 가르치지 않는 평화교육을 통해 수평적인 서로배움을 실천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는 의미와 빼앗긴 시간을 되찾아왔던 소설 주인공 '모모'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어요. 숨 가쁘게 바쁘고 빠른 현대사회의 시간 속에서 멈추고, 깊어지고, 울림이 있는 "돌아봄과 돌봄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www.peacemomo.org

* 이 글은 아름다운가게 나눔씨앗편지와 피스모모의 피스로그 게시판에서 모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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